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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학개론] 내 인생이 아닌 다른 이의 삶을 살아보는 경험

두 번째 취미, '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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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나은 기자
기사입력 2021-05-13

▲ 누군가의 인생을 살아보는 취미 '연기'(사진=김성진 강사)  © 팝콘뉴스


(팝콘뉴스=강나은 기자) *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것은 누구나 당연히 하고 싶은 일이며 누구에게나 당연히 필요한 일이겠죠. 하지만 취미를 묻는 말에 잠시 고민하게 된다면, 현재 내 삶에서 내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시간이 부족하다는 의미일 겁니다. 만약 시간이 넉넉한데도 떠오르는 취미 하나 없다면, 새로운 취미에 맛들일 기회가 아닐까요?

 

일상이 지루할 때면 우리는 드라마 속, 영화 속으로 떠나곤 한다. 매일매일 색다른 하루가 펼쳐지는 그 가상세계로 빠져드는 건 지루한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서는 아닐까. 그런데 그저 보는 것만으로 만족하기 어렵다면, 한번쯤 드라마 속, 영화 속 주인공이 되고 싶은 욕망에 빠져본 이들이라면, 취미로 주인공이 되어 연기하는 건 어떨까? 

 


평생 해보지 못했던 말이 대사로 흘러나오는 순간


 

소수의 사람만이 직업으로 배우라는 길을 택하고, 그 외의 사람들은 시청자의 역할을 맡는다. 하지만 배우 역시 시청자가 되듯이, 시청자 역시 배우가 되지 말란 법은 없다. 진로가 아닌, 취미로서의 연기는 표현력이 약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그중에서도 더욱 표현이 서툴렀던 어르신들이나 감정표현이 어려운 아이들에게 큰 변화를 일으킨다. 

 

팔순이 훌쩍 넘은 이 할아버지는 '사랑해'라는 말을 입 밖으로 꺼내 본 적도, 들어본 적도 없었다. 아내의 얼굴도 보지 못한 채 중매로 결혼했으니 아내와 낯간지럽게 '사랑한다'는 말을 나눌 새 없었다. 그저 한 가정이 제대로 돌아갈 수 있도록 애쓰는 것이 사랑의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아내와 자식을 위해 평생을 힘들게 희생했어도 '사랑한다'는 말을 건네진 못했다. 

 

그런 어르신이 취미로 연기를 배우면서 처음으로 멋쩍게 '사랑한다'고 말했다. 더 자연스럽게 대사를 말하기 위해 여러 번 되뇌어보았다. '사랑해', '사랑한다' 중얼거리자, 그간 자신이 멋쩍다는 이유로 못했던 감정 표현 때문에 지금은 너무나도 멋없게 변해버린 건 아닌지 고민된다. 연기를 배우지 않았다면 앞으로는 더더욱 말해보지 못했을 말을 걸음마를 떼듯 디뎌 보자, 그 말이 어색하긴 해도 못 할 말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예는 수도 없이 많다. 갑자기 벼락부자가 된 서민 역할은 어떨까. 할머니와 손녀가 둘이 통장을 보며 이야기한다. "이게 다 얼마야. 공이 하나, 둘, 셋, 넷.......100억? 우린 이제 부자야!" 복권을 사지 않아도 한번쯤 즐거운 상상에 빠져볼 수 있다. '100억이 있다면 무엇부터 해야 할까' 싶은 기대감과 '혹여 너무 많은 돈이 갑자기 들어오면 예상치 못한 다른 일들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든다. 잠깐이지만 즐거운 상상에 절로 입꼬리는 올라가고, 행복감에 젖어 든다.

 

연기는 내 인생이 아닌 누군가의 인생을 살아보는 취미다. 내 과거, 나이, 성별 상관없이 다른 누군가가 된 것처럼 행동하고, 말하고, 어떤 일에 대처하는 것, 그것은 역설적이게도 현재의 나를 바꾸는 힘이 된다.

 

▲ 시니어 연기수업(사진=김성진 강사)  © 팝콘뉴스

 


활력과 자존감으로 특별해지는 나 자신


  

시니어 뮤지컬을 만들고,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연기 강의를 이어오고 있는 김성진 뮤지컬 강사 겸 연출가는 취미로 연기를 접한 이들에게서 새로운 활력을 느끼곤 한다. 소리 내서 대사를 외워보고, 눈빛으로 감정을 표현하면서 이들은 마치 역할극을 준비하는 아이들처럼 설렘을 느낀다. 

 

"한 분은 요즘 설거지하는 게 너무 즐거우시대요. 설거지하면서 대사를 혼자 외워보시고, 연기도 연습하시는데, 그렇게 하다 보면 지루한 일도 하나도 안 지루하게 느껴진다면서요."

 

연기가 바꿔줄 수 있는 또 다른 품성이 바로 자존감이다. 부끄러워서 숨겨놓을 수는 있지만, 특별해지고 싶은 욕구는 누구에게나 있다. 그중에서도 주목받고 싶은 욕구를 애써 눌러왔던 이들도, 또 주목받고 싶었으나 그 기회가 없었던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많은 사람이 무대에 올라 연기는 하는 순간, 자신의 존재를 긍정하게 된다. 

 

자신뿐만 아니라 주변의 평가 역시 달라진다. 평범한 회사원이 자신이 나오는 연극이라면서 동료들에게 연극 초대장을 건네면, 동료들은 눈이 휘둥그레진다. 앞으로 그 사람은 흔한 동료가 아닌 배우로 무대에 서는 특별한 동료가 된다. 

 

어르신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스스로 무언가를 배우고 익혀서 보여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어르신들에게는 큰 동기부여가 되지만, 연기하며 주목받으면서 그동안 느꼈던 무기력감과 소외감도 떨쳐낼 수 있다. 

 

▲ 방송에 출연한 시니어 배우들(사진=김성진 강사)  © 팝콘뉴스

 


나만의 무대에서 펼치는 인생연기


  

연기를 취미로 접해보고 싶은 이들이라면, 가까운 문화센터나 구립·시립 복지관, 평생교육센터, 청소년센터 등에 개설된 연기강좌에 지원해 보자. 

 

"저 역시도 나이 들어서 연기의 꿈을 갖기 시작했고, 연기학원에서 연기도 배워봤어요. 그런데 연기학원에서는 입시 위주의 교육이 이루어지다 보니 연기를 배우러 가기도 힘들더라고요. 하지만 지금은 연기학원 외에도 다양한 센터나 기관에서 운영하는 강좌를 통해 청소년부터 시작해 대학생들, 직장인, 어르신 등 모든 연령대에서 연기를 취미로 접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취미로 접한 연기가 자신의 길이라고 생각된다면, 오디션을 보거나 출연 제안에 응하면 된다. 단, 출연 조건으로 금품을 요구하는 경우에는 과감하게 그 기회를 포기해야 한다는 점만 주의하자. 

 

드라마와 영화를 보며 한번쯤 '내가 연기해도 저 연기보다는 낫겠다' 싶은 자신감이 생긴다면, 연기를 직접 배워보자. 지금까지 내 인생이라는 유일한 무대만 경험했던 나에게 수많은 색다른 무대가 펼쳐질 것이다. 그리고 수십 개의 인생을 살아보며 대리만족을 느껴보라. 

 

평소의 나라면 절대 빠지지 않았을 유혹에 빠져 파멸에 이르러도 좋고, 평소의 나라면 절대 해내지 못했을 위대한 일을 이뤄내 모든 이들의 찬사를 받아 봐도 좋다. 아니면 극 중에서 정말 작은 역할을 맡아 무대에 드러나지 않은 이 사람의 일상을 상상해 연기에 옮겨 봐도 좋다. 이렇게 수십 개의 인생을 살다보면, 어느새 진짜 나의 삶에도 스포트라이트가 비춰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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