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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업! 평생현역] "은퇴 후에도 천직 이어가며 인생이 뽀송뽀송해졌죠"

서대문시니어클럽 뽀송뽀송에서 만난 권세천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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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호 기자
기사입력 2021-04-30

▲ 서대문시니어클럽 뽀송뽀송에서 만난 평생현역 권세천 씨(사진=팝콘뉴스)  © 팝콘뉴스


(팝콘뉴스=이준호 기자) * 굿업! 평생현역 코너는 인생의 후반전에서 새로운 일터에서 즐겁게 살아가는 중장년을 만나러 갑니다. 굿업은 정말 대단하다는 Good Up과 좋은 직업(業)을 뜻합니다. 

 

#1 

역시 나이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천직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자 눈빛이 달라진다. 이렇게 반짝이는 눈을 보는 것은 흔한 일은 아니다. 아마 시내 양복점에 나가 어른 틈바구니에서 재봉을 배우던 50여 년 전 까까머리 중학생도 이런 눈빛을 했으리라. 서대문시니어클럽의 시니어 빨래방 '뽀송뽀송'에서 만난 권세천 씨 이야기다. 

 

"일을 그만두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어요. 평생을 종일 일해야 하는 직업을 갖고 활동하다가, 팔자에 없는 백수생활을 하려니까 좀이 쑤시고 힘들더라고요. 그때 구청을 통해 할 만한 것을 찾다가 소개를 받은 것이 '뽀송뽀송'이죠. 어떤 일인지 이야기를 듣고 나서 이거다 싶었어요."

 

'뽀송뽀송'은 서대문구청 산하기관인 서대문시니어클럽의 시장형 일자리창출 사업 중 하나인 시니어 빨래방. 세탁물을 수거해서 세탁 후 배달하는 서비스다. 서대문구에 위치한 홍남경로당 2층에 세탁기 등 장비를 마련하고, 9명의 '평생현역'들이 즐겁게 일하고 있다. 

 

▲ 빨래가 끝난 세탁물을 점검하고 있는 권세천 씨(왼쪽)과 뽀송뽀송 근무자들.(사진=팝콘뉴스)  © 팝콘뉴스


서대문시니어클럽 관계자가 '뽀송뽀송'을 추천한 것은 그의 전직과 관련이 있다. 평생 의류 제작과 관리 분야에서 일했던 이력이 있기 때문이다. 

 

"집안 사정 때문에 중학교를 다니다 그만두고 일을 해야 했어요. 기술을 배워야겠다 맘먹고 찾아간 곳이 고향인 삼천포 시내의 양복점이었죠. 그것이 인연이 돼서 평생 옷과 씨름을 하며 살았어요. 양복점에서 옷을 만드는 모든 과정을 익힐 수 있었죠. 그리고 세상이 변해 기성복이 대세가 되어가던 시기에는 재봉틀을 잡았어요. 여러 업체를 거치며 재봉 등 의류 제작일을 하다 최종적으로는 세탁소를 하게 됐죠."

 

1990년대 중반 홍익대학교 근처의 한 세탁소를 인수한 후 2년 전 중간에 이전했던 신촌 빨래방을 매각할 때까지 20년 넘게 세탁업을 천직으로 알고 살았다. 

 

"세탁일은 꽤 고된 일이에요. 아침 9시부터 저녁 9시까지 12시간을 꼬박 일해야 하거든요. 가만히 앉아있지 못해요. 다 된 빨래를 가져다 드려야 하고, 또 영업도 다녀야 하죠. 그 사이 아내는 가게를 봐주고요. 그래도 깨끗해진 옷을 고객에게 전하는 보람이 커서 즐거운 마음으로 일했죠."

 

그렇게 부부는 성실하게 단골을 늘려 갔다. 양복점부터 의류공장까지 섭렵한 '정통파' 출신의 실력이 있었기 때문에 수선이나 옷감에 따른 전문적인 관리는 주변에서 따를 경쟁자가 별로 없었다. 

 

은퇴를 결정한 것은 특별한 계기가 있어서는 아니었다. 그는 여전히 건강했고, 어떤 일이든 해낼 자신이 있었지만, 어느 날 이만하면 됐다는 생각이 들자 미련 없이 가게를 접었다. 장성한 두 아들 덕분에 경제적으로 문제도 없었고 아내도 일로부터 해방시켜주고 싶었다. 

 

"1년 전 '뽀송뽀송'을 소개받고 처음 접했을 땐 여러 가지로 마뜩잖았죠. 세탁기도 제가 쓰던 영업용과는 달랐고, 건조기 위치도 부적절해 빨래가 마르는 데 오래 걸렸죠. 그래도 운영을 담당하는 사회복지사분들이 세탁에는 비전문가이지만 나름 고민하고 연구하신 티가 곳곳에서 묻어나더라고요. 노력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저도 도움이 되면 좋겠다 싶었어요."

 

 

▲ 권세천 씨는 “세제는 너무 많아도, 적어도 세탁물에 이상이 생길 수 있어 정량을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사진=팝콘뉴스)  © 팝콘뉴스


그의 손길이 곳곳에 미치며 '뽀송뽀송'은 변화해갔다. 처음엔 소비자들의 의구심이 더해져 수건이나 티셔츠 같은 단순한 세탁물이 주를 이뤘지만, 지금은 세탁이 까다로운 고가 의류나 패딩까지 척척 해낸다. 일반 세탁소에서 꺼리는 바닥용 러그도 다룬다. 얼룩이 있다면 빠질 때까지 계속 세탁한다. 그는 "세탁기에 들어가는 제품은 모두 세탁한다"고 설명했다. 여건이 허락하는 한 최대한 고객의 요구에 맞춘다는 것이 이들의 생각이다. 

 

"직접 세탁소를 운영할 때에 비하면 수입은 비교할 바 못 되지만, 일할 때 느끼는 보람이나, 산뜻하게 세탁된 옷들을 볼 때의 즐거움은 예전과 같아요. 제가 천직으로 삼았던 일을 계속할 수 있게 되어 감사할 따름이죠. 다른 분들도 일하는 기쁨을 계속 즐기셨으면 좋겠어요." 

 

'뽀송뽀송'이란 정감 가는 작명 센스는 서대문시니어클럽의 트레이드마크다. 이 밖에도 세차 서비스 '취익취익'과 돌봄 서비스 '보듬보듬', 반찬 서비스 '야미야미' 등의 사업이 있다. 또 공익형이나 사회서비스형, 취업알선형 사업도 진행 중이다. 사업 참여 중장년은 월 60시간 미만의 근무시간을 배정받는데, 보통은 월 24시간 정도다. 3시간씩 일주일에 2번 일할 수 있다.

 

▲ 뽀송뽀송에서 권세천 씨(왼쪽)와 함께 일하는 동료들.(사진=팝콘뉴스)  © 팝콘뉴스


뽀송뽀송 운영을 담당하는 이소영 사회복지사는 "서대문 구민들에게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노후에도 일한다는 보람으로 참여 어르신들의 자부심이 굉장히 높다"며 "특별히 이사를 가거나 병환이 생기는 경우가 아니라면 빠지지 않고 적극적으로 참여하신다"라고 설명했다. 

 

덕분에 지금은 고정고객도 많이 늘었다. 세탁물을 맡기면 수거부터 세탁 배달까지 모두 서비스하고, 40L 부피 기준으로 회당 5천 원이라는 저렴한 가격, 세탁이 완료된 의류는 모두 어르신들이 손수 개어 전달하는 정성까지 매력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뽀송뽀송은 올 하반기부터는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한 돌봄사업 일환으로 무료 세탁 지원사업도 계획 중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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