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 그 이후] 가해자 경징계, 피해자 부서 이동…“할 말 없다”로 일축하는 까닭

(팝콘뉴스=김수진 기자)

지난 3월 회식자리서 한 임원이 더 좋은 부서 이동을 빌미로 수습사원에게 손등에 키스를 강요하는 등 성추행을 했다는 주장이 제기되며 직장 내 성폭력 논란을 일으켰던 삼아제약. 그 이후 가해 임원과 피해 사원 간의 성추행 문제는 어떻게 해결됐을까. 삼아제약 성추행 논란 그 이후를 <팝콘뉴스>가 기획코너 '사건 그 이후'를 통해 들여다봤다. <편집자 주>

삼아제약(대표 허준)의 한 임원이 수습사원을 성추행한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은 가운데 사측이 해당 임원에는 1개월 근신을, 피해 직원에는 부서 이동 등의 처분을 내려 물의를 빚고 있다.

이 같은 삼아제약 측의 대응은 최근 직장 내 성폭력 문제와 관련해 대다수 기업들이 가해자를 정직이나 대기발령, 보직해임 등으로 강경하게 처벌하는 것과는 대비되는 경우.

일각에서는 직장 내 성폭력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는 때 조직에서 가해자에게 주는 솜방망이 처벌이 피해자들의 고통을 더 키운다는 지적이다.

영업사원인 피해자 소속 팀과 담당 지역 변경…“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가해자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피해자의 고통 가중

지난달 5일 서울 강남경찰서에 따르면 삼아제약 임원 A씨가 지난 3월 회식자리에서 같은 영업부 소속 수습사원 B씨에게 강제로 손등에 입을 맞추게 하는 등 성추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고 밝혔다.

성추행 피해를 주장하는 수습사원 B씨가 일부 매체를 통해 밝힌 당시의 상황은 이렇다.

앞서 제약 관련 경력이 있던 B씨는 마케팅 PM(Product Manager)이 되고 싶었고 이를 위해 영업사원 경력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이에 B씨는 지난해 9월 삼아제약 수습 영업사원으로 입사했고 이후 연수 교육에서 동기 중 1등을 하는 등 두각을 나타냈다.

문제는 지난 3월 회식자리에서 벌어졌다.

술에 취한 A씨가 B씨에게 옆자리에 앉으라고 불렀고 이에 B씨가 옆에 앉자 A씨는 “마케팅 부서에 공석이 하나 났는데 오고 싶으면 나한테 잘 보여야 한다”고 말했다는 것.

이어 A씨는 이야기를 이어가며 B씨의 머리와 얼굴에 손을 댔고 허리를 감싸려는 듯 다가와서 B씨는 이를 피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A씨의 행동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고 회식이 마무리될 때쯤이 되자 B씨에게 악수를 청했고 이에 B씨가 악수를 하려는 순간 A씨는 “열심히 하겠다는 의미로 내 손등에 키스를 하라”고 요구했다.

이에 B씨는 손을 빼려고 했으나 A씨가 “키스해, 키스해”를 외치며 계속 소리를 질렀다는 것.

결국 B씨가 A씨의 손등에 입을 맞추지 않자, 오히려 A씨가 B씨의 손등에 입을 맞추는 또 다른 추행 장면이 연출됐지만 그 자리에 많은 직원들 중 B씨를 위해 나서는 사람은 없었다고 전해진다.

▲ 삼아제약의 한 임원이 수습사원을 성추행한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은 가운데 사측이 해당 임원에는 솜방망이 처벌, 피해 직원에는 부서 이동 등의 처분을 내려 물의를 빚고 있다. ©삼아제약 홈페이지
그 이후 B씨는 성폭력 상담센터와 법률사무소를 찾아다녔고 인사과에 면담을 요청하는 등 성추행 피해로 인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이어 A씨에게 △전체 직원이 있는 공개석상에서 진정성 있는 사과 △홈페이지에 공식 사과문 게재 △B씨의 업무실 장소를 옮기거나 종합병원사업부 업무실 위치 변경 △형식적인 성교육이 아닌 성교육전문가의 정기적인 교육 마련 등의 이행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에 A씨는 이를 거부했고 “그날 술이 많이 취해 딸인 것으로 착각했다”며 “공식 사과를 하면 회장님이 알게 된다”며 책임을 회피했다는 것.

문제가 커지자 간부급 직원들이 A씨에게 퇴직을 권고했고 이에 A씨는 사직서를 제출했으나 의외로 삼아제약은 해당 사직서를 반려했다.

대신 징계위원회를 열어 A씨에게 '정직 1개월'과 '교양도서 10권 읽기' 그리고 '전 직원 대상 사과문 발송'이라는 징계를 내렸다.

이에 B씨는 “솜방망이 처분에 너무 화가 난다”며 “한 달 후면 다시 A씨와 마주치며 후폭풍을 감당해야 하는데 회사가 가해자를 보호하는 듯한 태도를 보여 참을 수 없다”고 말하며 결국 A씨를 고소했다.

이후 삼아제약은 오히려 B씨의 담당 부서와 영업 지역을 바꿔 버렸다.

삼아제약 측은 강남, 건국대입구, 구리 등이었던 B씨의 영업 지역을 경기도 광주와 하남으로 바꾸었다.

아울러 B씨가 A씨와 같은 층에 근무하면 정서적으로 불안할 수 있다는 명분을 내세워 '종합병원사업부'를 맡고 있던 B씨를 고소 이후 '의약사업부'로 발령한 것.

이에 대해 B씨는 “팀과 담당 지역을 바꾼 건 고객을 바꾼 것이다”라며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라고 울분을 토했다.

아울러 부서가 변경된 시점에서부터 회사 내부에서 집단 왕따도 시작됐다고 전했다.

또 다른 간부급 직원은 B씨에게 “고소를 해 놓고 뻔뻔하게 회사에 나오느냐”며 큰 소리로 화를 냈고 이어 “또 나왔네. 출근을 계속 할거냐”며 비꼬는 선배들도 많았다는 것.

게다가 한번은 아무런 상관이 없는 부서의 상사가 오더니 “선배들이 너 때문에 피해를 본다”면서 직원들 앞에서 소리를 쳤다고 말했다.

이에 B씨는 “윗선에서 내가 스스로 나가게끔 만드는 시나리오를 짰고 몇몇 직원들이 눈에 띄게 이행하는 것이라는 이야기도 들었다”고 말했다.

B씨는 새로 발령받은 부서에서도 냉대를 느껴야 했고 이러한 상황에 심한 공황장애 증상을 느껴 정신과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성추행 가해자의 진정성 있는 사과와 피해자에 대한 회사 차원의 배려를 받고 싶었을 뿐이라는 B씨에게 삼아제약 측은 “사실과 다른 내용이 많아 명예훼손 등 법적 대응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관계 전문가는 일부 매체를 통해 “(가해자를) 고소하면 실형이 많이 나오는데 문제는 피해자가 원만한 직장생활을 원하고 보복을 두려워해 고소 비율이 10%도 안 된다”며 “직장 내 성폭력 문제가 법보다는 인식과 운용상의 문제가 크다”고 말했다.

이어 “조직 내 주변 사람들이 못 본 척하지 말고 현장에서 개입해 성희롱을 막고 사후 보복도 하지 못하도록 하는 등 성희롱을 용납하지 않는 기업 및 사회 문화를 조성하는 일이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이에 <팝콘뉴스>는 이와 관련해 삼아제약 측의 입장을 들으려고 관련 관계자와 통화를 시도했으나 번번이 담당자 부재의 이유를 들어 답변을 듣지 못했다.

이어 관련 담당자가 아닌 다른 직원과의 통화에서 “(담당자가) 해당 사건과 관련해 '할 말이 없다'고 전하라”고 알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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