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산시 '오소' 브랜드.. 손님과 사장님으로 '이웃되기' 중
"자주 보다 보면 편견 사라지고, 더 할 수 있는 일 자꾸 생각나"
비장애인과 함께하는 활동 자체 의의도

▲ 지난 12일 안산시 장애권익옹호 업소 '오소가게'를 발달 장애인 당사자 모니터링단 '오소활동단'과 함께 찾았다. 사진은 오소가게 '카페 나드오프' 야외 테이블에서 대화를 나누는 사장님과 오소활동단 © 팝콘뉴스

(팝콘뉴스=권현정 기자) "AAC(그림 등이 병기된 대체의사소통 기구) 메뉴판이 있잖아요. 말 안 해도 주문할 수 있으니까 좋아요. 사장님들도 친절하시고요. 하지만 화장실은 좀 멀었어요."

카페 나드오프 외부에 설치된 화장실 앞에서 입구에 깔린 점자블록까지 발로 꾹꾹 눌러 확인하던 김영훈 오소활동단(이하 오소단) 활동가는 이후 모니터링 결과를 기록할 때도 신중했다.

긴 고민 끝에 '직원은 친절한가요?', '주차장이 있나요?', '상점에 찾아가기 쉬웠나요?', '오늘 활동을 하고 기분은 어땠나요?' 등 문항에 'O', 'X', '몰라요' 중 하나를 선택하는 김영훈 활동가에게서 "빨리 하고 집에 가고 싶다"던 초반의 장난기는 찾아볼 수 없었다.

지난 12일, 지난해에 이어 올해 '시즌 2'를 맞은 오소활동단의 모니터링 활동에 동행했다. '오소활동단'은 안산시에서 운영하는 친화가게 '오소가게'의 발굴, 이용, 모니터링, 리뷰 등에 참가하는 시민 활동단이다.

복지관마다 상황이 다르지만, 대부분 복지사 등으로 이뤄진 비장애인 활동가와 함께 발달장애인 당사자 활동가가 한 팀을 이뤄 활동한다.

이미 오소가게 인증을 받은 곳이라고 해서 '좋은 게 좋은 것'이라고 마냥 좋은 평가만 하리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오소가게 인증 전후, 가게를 가장 먼저 이용하는 선발대인만큼, 평가는 깐깐하고 책임감은 무겁다.

■ 오소가게에 어서오소

▲ 홍쌤공방 앞에 붙은 오소내일가게 현판 © 팝콘뉴스

먼저 찾은 곳은 안산시 상록구에 위치한 '홍쌤공방'이었다. 이동혁 당사자 활동가와 강정민 당사자 활동가, 이영준 안산시 상록장애인복지관(이하 상록장복) 팀장과 동행했다.

홍쌤공방은 '예비' 오소가게지만, 이미 활동가들과는 안면이 있다. 홍쌤공방의 사장님은 상록장복에서 운영하는 교육 프로그램 강사로 참여하다가 작년부터는 본격적으로 '오소 내일가게'로 복지관과 연을 맺기 시작했다.

안산시는 오소가게와 함께 동네 가게에서 장애친화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오소클래스'를 운영하고 있다. 강사는 사장님이다.

홍쌤공방의 사례처럼 당사자와 매장의 접점을 늘려 동네가게들이 내일가게에서 오소가게로, 오소가게에서 내일가게로 '선순환'하는 구조를 꾸리는 것이 사업의 장기적인 청사진이다.이 지점에서도 당사자 활동가의 역할은 지대하다.

이날 이동혁·강정민 활동가는 캘리그라피가 올라간 LED 무드등을 만들었다. 무서운 집중력으로 오늘 할 활동을 선택하고, 문구를 정하고, 투명한 판 위를 예의 문구를 적은 스케치를 따라 갈아내는 동안에도 두 활동가는 문득문득 이해가 어렵거나 방법이 헷갈릴 때는 즉각 질문했다.

홍쌤공방 사장님은 "학교에서는 일반학교든 특수학교든 (활동에서) 차단되는 경우가 많지 않나. 수업을 따로 한다든지. 그런데 사실은 할 수 있는 게 많은 아이들"이라며 "(올해는) 조금씩 (회차마다) '업그레이드'하는 수업을 해보고 싶다. 이제까지는 오시는 분들 성향을 잘 몰랐잖나. (이제는 조금 아니까) 행동이 얼마나 자유로운지에 따라서 품목을 늘리거나 폭이 넓어지게끔 하고 싶다"고 올해 계획을 귀띔했다.

"(활동 전까지는) 편견이 있었는데, 참 친근한 아이들"이라고도 덧붙였다.

강정민 활동가는 "처음에 (활동을 위해 가게에) 오면 사장님이나 직원분들께 인사를 드리고, 장애인들이 올 수 있는 가게인지, 경사가 있는지, 휠체어가 다닐 수 있는 공간이 다양한지 등을 본다"며 "다른 장애인 당사자들이 편하게 올 수 있도록 먼저 가서 어떨지 확인하는 게 오소단 역할이다. 리더십이 있는 편이라 (잘 맞는다)"고 자부심을 드러냈다.

▲ 활동 중인 강정민 활동가(사진 오른쪽)과 홍쌤공방 사장님 © 팝콘뉴스

두 번째 활동은 차로 20분 정도 거리에 있는 카페 '나드오프'에서 김영훈·심현보 당사자 활동가와 박선미·라윤정 안산시장애인복지관(이하 안산장복) 사회복지사와 함께 진행됐다.

첫 번째 가게에서 '활동의 편의'를 살피는 작업이 이뤄졌다면, 나드오프는 카페인만큼 '이용 편의'에 주안을 두고 모니터링이 이뤄졌다.

모니터링에서는 깐깐한 이들이었지만, 전후로는 '단골손님'의 면모가 도드라졌다. 저번에 왔던 다른 복지관 손님 이야기, 쿠폰을 올해 여름에는 쓰겠다는 이야기, 커피맛이 좋다는 사소한 수다가 테이블 위로 핑퐁처럼 오갔다.

나드오프 사장님은 "원래는 좋고 싫고를 떠나서 '몰랐다'. 무관심했는데, 몇 년 전 특수학교 교사가 가족으로 들어오면서 관심을 두게 됐다. 마침 복지사님이 카페에 자주 방문했었고, 나중에는 (장애인 당사자와) 같이 오시기도 하고, 부모님들과 같이 오시기도 했다"며 "돌이켜보면 (장애인 이웃을) 만날 기회가 적었다. 내 마음이 많이 변했다. 예전에는 (장애인을) 마주쳐도 지나쳤다고 하면, 이제는 말을 걸어주시면 대답하고, 오시면 밖에서 얘기 나누고 그런다"고 말했다.

■ 하다 보면 나아지는 것

이처럼 '몰랐던 이웃을 알게 되는 경험'이 활동을 이어가는 계기가 된다는 설명이다.

나드오프 사장님 역시 "생각보다 놀랐던 건 사람들이 (장애인 이웃과 오소가게에) 관심이 낮다는 거였다. 저도 늦게나마 관심 가지기 시작했는데, 오소가게가 뭔지 아예 모르는 사람도 많았고. (반면) AAC를 알고 계시는 분들도 있어서 놀랐던 경험이 있다"며 "돌아다니면서 활동할 수는 없으니까, 가게에 있는 동안 오소가게 홍보하는 식으로 적극적으로 도울 예정이다. 주변 한 상가동 전체가 오소가게가 되면 좋겠다는 바람도 있다"고 말했다.

홍쌤공방 사장님 역시 당사자와 접점이 늘어나면서 '할 수 있는 일'이 보이더라고 이야기했다.

홍쌤공방 사장님은 "작년에 (내일가게를) 진행하면서 근처에서 길을 잃었다가 가게로 전화 온 학생이 있다. 토요일이었는데, 한두 시간 앉아서 이야기하다 갔다. 쉴 수 있는 공간, 대화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구나, 싶었다"며 "장애가 있는 친구들은 일상적으로 기회가 주어지지 않으면 (정보를 스스로 찾아서는) 오기 힘들다. 기회가 돼야 스스로 들어올 수 있는데, 그걸 어떻게 하지는 못하더라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하자 싶다"고 말했다.

이런 '변화'를 알고 있기에, 오소가게의 문턱은 크게 높지 않다. 조건은 '친절한지', '같이 할 마음이 분명히 있는지', 그래서 '편한 마음으로 이용할 수 있는지' 정도다.

이영준 상록장복 팀장은 "예전에는 환경적인 요인을 좀 더 봤다. AAC가 갖춰져 있는지, 휠체어가 진입할 수 있는지. 그런데, 좋은 마음으로 함께하겠다는 사장님이 있는데, 불편해서라도 안 하는 곳이 생기겠더라"며 "정말 참여할 마음이 있는 분들이라면 일단 시작하자, 가게 환경은 그 분들의 마음이 더 움직이고, 내가 노력을 좀더 들여서 (그 다음 노력하는) 식으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완벽한 상태로 시작하지 않아도 "하다 보면 나아지는 것"이 있다는 설명이다.

■ 자꾸 만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이웃이 되고

▲ 카페 나드오프에서 AAC 메뉴판을 보고 있는 심현보 활동가 © 팝콘뉴스


그렇다면, 오소단은 왜 활동을 계속할까. 우선은 "단골가게를 친구에게 소개할 수 있다는 즐거움"이겠지만, "오소단 활동에서 가장 즐거웠던 경험"에 관한 질문에 이날 모든 활동가들은 "함께해서 즐겁다"고 한 사람처럼 입을 모았다.

김영훈 활동가는 "1회 때가 정말 재미있었다. 여기 카페 2층 다락에서 커피 마시고 이야기도 하고, 그 친구들하고 계속 카톡하고 있다"며 "한 조가 비장애인 2명, 장애인 2명이다. 다 엄청나게 친해졌다. 전에는 그냥 같이 다니다가 갑자기 '반지 만들러 갈래?' 누가 제안해서 간 일도 있다"고 추억을 꺼냈다.

이동혁 활동가 역시 "(오소단과) 밥도 먹고 활동도 한다"며 "활동하는 것이 즐겁다"고 말했다.

라윤정 안산장복 사회복지사는 "영훈 씨가 활동하면서 '비장애인 친구가 있어서 좋다' 그러더라. 비장애인 친구를 만난다는 것 자체도 (활동의) 큰 의미구나 싶었다"며 "(활동) 안에서 관계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큰 변화가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앞으로 상록장복과 안산장복, 안산시는 2020년 20개 오소가게, 2021년 오소가게 30곳과 내일가게 26곳, 총 56개 가게에 이어 가게 발굴에 더 박차를 가할 예정이다. '신뢰감 있는 리뷰어'들의 리뷰를 '잡담회'를 통해 사장님들, 다른 활동가들과 나누는 활동도 계속한다.

활동에 참여하는 이들은 이 같은 활동이 '지역사회에서 장애인 더부살이'의 첫걸음이라고 믿고 있다. 자주 만나고, 만나서 알게 되고, 알게 되면 필요한 게 보이고, 필요한 걸 결국 하게 되는 선순환의 첫 단추라는 설명이다.

이영준 상록장복 팀장은 "(개인에 대한 지원 공백을) 같이 풀어갈 수 있는 게 지역 커뮤니티다. 커뮤니티 조성에는 오소가게처럼, 지역 인프라를 만들고, 말 그대로 사람과 사람을 잇는 게 중요한 일인데, 제도나 정책에 주의가 많이 쏠린 것 같아 안타까울 때가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언젠가 '오소가게'라는 이름이 없어지더라도 그 안의 관계는 그대로겠죠. (사업을 운영한다기보다) 그 관계, 인프라를 만들어가는 중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래서 저희끼리는 '오소가게 사장님', '활동가님' 안 하고 그냥 '누구 씨' 해요. 그게 자연스럽잖아요? '오소가게'도 그냥 '친화상점'이라고 부르죠. '친절한 상점'이라서요."[팝콘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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